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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이야기

마지막 잎새

후덕후덕 2019. 4. 25. 17:08

 고통을 참는 건 그 어떤 일보다 힘든일이다. 그래서 그걸 버티기 위해 진통제라는게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마약성진통제에 중독이 되기도 한다. 병원에 있다보면 통증을 참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치병으로 인한 통증 환자들의 삶은 슬픔과 끔찍함으로 가득차있다. 통증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도때도 없이 작은 자극에도 아픔을 일으키며, 이것은 먹고 자고 싸는 쉬운 생활마저 쉽게 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환자들을 이야기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녀는 평범한 환자였다. 병원에 오는 노인들처럼 줄줄이 병명이 달려있지도 않았다. 특이사항이라면 자궁을 전부 드러내는 수술을 했고, 통증에 좀 예민하다는 점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진통제를 주면 많이 좋아졌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였다.

 

"진통제를 좀 줄이고 싶은데, 이 환자는 왜이렇게 예민하지?"

 

 짜증섞인 담당 교수의 말이었다. 통증에 예민한건 환자 잘못이 아니다. 의사 잘못도 아니다. 그냥 사람에 따라 그런 정도가 다를 뿐이다. 진통제가 잘 안듣는 환자일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신경이 예민할 수 도 있다.

진통제를 주면 될 일이다. 하지만 교수가 고민하고 있는 건 그 이후의 일이었다.

 

"혹시 신경쪽 문제가 있을까봐 그러세요?"

 교수는 당시 학생이었던 내 질문을 듣고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안경너머로 따뜻한 눈길로 나를 한번 봤다. 잠시 옛생각을 하듯 지긋이 바라본 그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얼마나 좋겠니?

음...큰일이네...사실은 이 수술이 포괄수가제에 묶여서 이제 퇴원해야 하거든.."

 

 교수는 차라리 나를 부러워했다. 환자의 주 고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학적으로 순수하게만 처치할 생각만 하는 나를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럴 위치가 아니었다. 그는 환자의 상황을 토대로 더 입원시켜야만 하는것을 분명하게 인지하는 사람이었지만, 국가에서는 그걸 원치 않았다.

절박한 환자의 말을 들어주었다간 과잉진료로 집중 포화를 맞을 국가의 철퇴가 만만치 않았다 .

이건 교수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앞으로 올 환자들에게 더 집중하려면 국가에게 철퇴를 맞아서는 안된다.

 

결국 교수는 환자를 퇴원시키기로 결정했다.

문재인케어는 비교적 최근에 시행되었기 때문에, 교수는 이런 상황이 익숙치 않다.

오후 5시 무렵. 그는 통증때문에 똑바로 앉아있지 못하는 그녀의 침대 앞에 섰다.

 

"말씀드렸다시피 내일은 나가셔야합니다."

 

"아니, 교수님. 아시잖아요.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나가요. 부탁드립니다. "

 

"제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퇴원하셔야돼요. 더 입원하시면 불법진료로 저희도 혼납니다."

 

교수는 단호했다. 어제만 해도 고민에 짜증섞인 행동만 하던 그는 냉기 섞인 말투로 단호히 말하고는 돌아섰다.

이게 나라에서 원하는 치료일까?

교수님께 감히 여쭙고 싶어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교수님에게 뛰어갔지만

내가 묻기도 전에 그는 대답을 했다.

 

"X발..."

 

그는 담배 한대 필것이다. 핀 후 그녀를 잊기위해 노력할것이다. 답답하지만 그도 결국 일개 의사다 .

나라에서는 돈을 쥐어짜고, 그가 할 수 있는 역량은 정해져있다.

이건 그의 실력과 관계가 없다.

단지 그들의 무력행사에 희생되는 환자들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만 하는 현실이 무섭기만하다.

 

 환자에게 나라에서 삭감하지 않는 최대한의 진통제를 처방해줬다.

효과가 미비할 것이다. 진통제가 떨어질때마다 그녀는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해 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의사는 생명이 돈보다 중요하지만, 나라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문재인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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